"특등급~ 쿵쿵쿵, 여기까지는 1등급…." "이건 2등급.""뭐라 2등. 한 개만이제이. 어휴~ 2등이 와이리 많노. 다음에 올땐 2등 직인은 아예 가져오지 마소.""(검사원) 그랴. 다음엔 특등직인만 가져와야것네. 허허.""꼭 그러이소마. 하하하"그루터기
국립김해박물관의 로고를 눈여겨 본 사람은 오리문양을 기억할 것이다. 오리 두 마리가 물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박물관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도 오리형태 토기이다. 국립김해박물관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왜 오리가 등장하는 것일까.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김해에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가야의 문양에는 오리 말고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변화는 꼬리를 문다. 김해가 달라지면 김해의 마을도 달라진다. 20여년 전 장유면 대청리(계동마을)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당시 계동마을은 몇몇 집이 비탈산(추월산) 아래 자리를 잡고 있고 논농사 밭농사 지으며 오순도순 살던 곳이었다. 그러다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급격히 변해갔다. 비탈산은 평지가 되다시피 했고 도로가 생겼으
청년인 줄 알았다. 생수통을 배달하는 모습이 활기차고 단단해 보여 막 일을 시작한 사람인 줄 알았다. 막상 이야기를 터놓고 보니, 이승희 씨는 장년의 나이(42)였다. 인생유전이 만만치 않았다.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꿈을 간직한 그는 현재 영어교재 1인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생수를 배달하고 틈나는대로 아르바이트도 한다. 김해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고심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철따라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한다. 학예회도 하고, 교지문집도 만들어낸다. 감동으로 북받치는 졸업식도 한다. 홈페이지도, 교목도, 교화도 있다. 한 마음으로 교가도 부른다. 이들에게 없는 것이라고는 전용교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은 초가이다. 백성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볏짚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추수가 끝나면 볏짚으로 새 지붕을 이어 올렸다. 볏집을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지붕을 얹었다. 벼농사가 드문 강원도는 대신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송판이며 나무널판을 얹는 강원도의 너와지붕이 생겨났다.
"늦 가을의 어느 날, 창밖으로 스쳐 지나던 낮은 산언저리마다 주홍빛으로 익어 가던 그 많은 감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가 어디야? 함께 여행하던 동행에게 물었죠. 진영이라고 하더군요. 진영이라는 지명이 가슴에 확 꽂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청량한 바람도 좋았지만 마치 주홍색 보석처럼 빛나던 감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개인의 희로애락에서부터 한 나라 한 민족의 큰 염원까지도, 따라 부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 노래가 아닐까. 그 노래에 자신들을 다스릴 참 주인을 맞고 싶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노래이며 깊고도 넓은 시다. 까마득한 고대의 김해에서 그런 노래가 불려졌다.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시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집단 무가인 '구지가(龜旨歌)'이다.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지을만큼 중요하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그 중요한 헤어스타일을 자기가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는 미장원과 이용실에 다닌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매력을 찾아주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면 말 그대로 '충성도 높은 단골고객'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자라온 문화적 배경도 다른 타국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면 적잖이 답답할 것이다. 김해는 외국인근로자가 많은 도시다. 그들은 어디에서 머리를 자를까. 김해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입소문이 난 서상동의 '종로헤어컬렉션'을 찾았다.
세상의 영웅이 될 날을 향해 뛰는 청소년 축구 선수가 김해에 있다.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축구천재'라는 말을 들으면서 주목받고 있는 차민승(18·내외동) 선수이다.11명의 경기자로 구성된 두 팀이 발과 머리로 공을 쳐서 상대편 골에 넣음으로써 득점을 겨루는 스포츠. 축구가 이렇게 간단하게 정의되다니, 어딘지 서운하다. 그냥 달
대조영, 천추태후, 선덕여왕, 김수로, 근초고왕, 짝패, 무사 백동수, 계백, 평양성, 조선 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이들의 공통점은? 사극드라마, 그리고 사극영화이다. 여기에 하나 더. 김해 삼계동 '검파람 검도관'의 김준오(37) 관장이 승마와 무술 부분의 교관을 맡아 활약했던 드라마이고 영화이다. 시청자들은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거나, 달
집안에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어른이 계셨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가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그뿐이지만, 주민정(43) 씨는 옷 만드는 일에 욕심이 많았다. 주 씨는 대학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하고, 일본에서도 의류 디자인을 전공했다. 공부를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와서는 성균관대 궁중복식연구소에서 한복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석주선(1911∼1996.
포클레인에서 이쑤시개까지, 인간이 쓸 수 있는 도구란 도구는 모두 동원해야 하는 분야가 있다. 고고학이다. 역사 유적을 발굴하는 현장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섬세한 붓질로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기만 하는 근사한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 삽으로 흙을 퍼 올리고, 쪼그리고 앉아 꽃삽으로 흙을 긁어내기도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나 중국의 진시황릉처럼 거대하지
손으로 하는 많은 일과 물건들이 잊혀져 간다. 그 중 하나가 '수제 인장'이다. 도장을 팔 때도 컴퓨터로 활자체를 선택하고 기계로 파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도장을 찍지 않고 사인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사인만으로 통장도 만들고, 신용카드도 발급 받는다. 일일이 도장을 찍는 일에서 벗어난 우리는 정녕 자유로워진 것일까. 혹시 그만큼 쉽게 결정하고
방글라데시인 시라줄(32) 씨는 무슬림이다. 하나님께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드려왔다. 산업연수생으로 김해에 온 지난 2000년 즈음에는 부산까지 예배를 보러 가야 했다. 매주 토요일이면 회사를 퇴근하고 숙소에 돌아와 몸을 씻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나서도 지하철을 타고 부산 남산동의 이슬람성원을 찾아가면 10시경이었다. 힘들지 않았다. 하나님께 예배를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었던 이갑성(1889~1981) 애국지사가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기 전이었다. 면회가 금지될 정도로 위중했다. 이 지사에게 간호사가 쪽지를 한 장 건넸다. 그 쪽지를 읽은 이 지사는 반가움에 몸을 일으켰다. "배동석이 왔다고?" 쪽지를 건넨 이는 배동석이 아니라,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우리 나라는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전국 문화원연합회에서는 고령화사회를 복지차원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노인들이 향유하거나 창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관련 프로그램 공모사업을 시작했다. 김해문화원에서 기획한 '동화 속 행복나라'는 이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대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원까지 찾아오
"서마지기 이논배미 모를 심어서 영화로다. 우리야 부모님 산소등에 솔을 심어서 영화로다. 아래웃는 못꾼들아 춘삼월이 어느때고. 우리야 부모님 길 떠날때 춘삼월로 올라드네."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마사리 안상분 할머니(75)가 기억하는 모내기 노래다. 인제대학교 문화사업단이 김해의 구전민요를 채록할 때 안 할머니의 기억으로 되살려 낸 귀한
너무 큰 바다여서 그 이름조차 태평양인 짙고 푸른 바다에 밤이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별이 떴다. 별이 얼마나 많았으면 밤하늘이 온통 금빛 모래사장처럼 보였을까. 그 별빛이 얼마나 밝았으면 태양이 없어도 상관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까. 남궁훈(32)씨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본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그는 바다에서 세상에는 저 별만큼 많은 사람들
기차를 타고 대구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동안, 누가 시를 더 많이 외나 친구와 내기를 했던 여군장교가 예순이 넘어 시인이 되었다. 폴 베를렌느, 서정주, 이영도의 시를 외우는 동안 기차는 어느새 종착역에 도착했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기찻길은 짧았고, 시의 길은 끝이 없었다. 올해 일흔을 맞은 이현주 시인이 등단한 것은 지난 2005년이었다. 늦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