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오광대의 주인공격인 말뚝이탈을 들어보이는 이명식 회장. 정순형 선임기자

 

"김해오광대가 모든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차세대 주역들을 위한 콘텐츠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지난 27일 토요문화학교 3기 수료식을 마친 이명식(68) 김해오광대보존회장 겸 김해민속예술보존회장. 지난 5월 첫째 주 토요일부터 김해지역 초등학생과 학부모 20명에게 26회에 걸쳐 탈춤과 장구, 꽹과리 등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감하는 김 회장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27일 토요문화학교 3기 수료식
전통의 맥 이어갈 후계자 양성
대중문화로 향하는 기초작업


열흘 전인 18일에는 김해오광대 가능이수자 22명에게 수료증을 수여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김 회장은 탈춤을 비롯한 전통 놀이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에 빠져 산다고 했다.
 
1950년, 김해오광대의 발상지인 김해군 가락면(현 부산 강서구 가락동)에서 태어났다는 김 회장은 자신과 김해오광대와의 만남을 '운명적'이라고 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마을 어른들이 농협창고 앞마당에 횃불을 켜놓고 오광대를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는 김 회장은 197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김해오광대의 맥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졌다고 했다. 김 회장 역시 고향마을을 떠나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김해오광대는 고향을 지키는 몇몇 어른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김 회장이 마흔 살 되던 1989년. 김해문화원 담 너머로 흘러나오는 북과 꽹과리 소리를 듣고 무작정 찾아들어간 것이 운명을 갈랐다고 했다. 당시 김해문화원장으로 일하면서 김해오광대 복원 작업에 열중이던 류필용 전 원장(2000년 작고)을 만난 것이다.
 
이후 김 회장은 류 전 원장을 택시에 태우고 부산 강서구 가락동 일대를 누비면서 김해오광대를 복원하는 작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사를 기억하고 있는 마을 노인 앞에 녹음기를 켜두고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 보니 생업은 뒷전이었다. 매일 오전 8시, 김해문화원으로 출근해 저녁 7시까지 김해오광대 대사를 외우고 춤 사위를 배우는 연습을 하다보니 택시 영업시간은 밤 8시부터 새벽 2시까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택시 기사 생활도 오래 갈 수는 없었다. 류필용 전 원장이 2000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죽더라도 김해오광대를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일을 자네가 이어받아 완수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한 유언 때문이었다.  
 
류 전 원장의 유언에 발목이 잡힌 김 회장은 2003년, 정든 택시 운전대를 놓고 김해오광대를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일에만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 회장의 노력이 열매를 맺은 2015년, 김해오광대가 경상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쾌거를 이뤘다. 그 후속 작업으로 김 회장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김해문화회관 강당에서 후계자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김해지역 각급 학교와 전국 축제 현장을 찾아가는 등 대중화 작업을 실행하고 있다.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옥의 고향인 인도 아유타국 초청 공연도 여러 차례 다녀 오는 등 글로벌 감각을 키우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향후 과제를 묻는 말에 김 회장은 "김해오광대가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시대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을 만들고 해외 공연을 위해 대사를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진행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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