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동 칠불사 대웅전 한쪽 벽의 7왕자 불상 앞에서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다.


'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를 준비하고 연재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예상치 못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잃어버린 왕국 '가야'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최근 지역 불교계를 중심으로 가야사와 가야불교의 복원을 표방한 가야불교문화진흥원이 출범하기도 했다. 올 초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는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를 출간해 허왕후와 가야불교의 인도 도래에 대한 진위 공방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기획 연재 후 정부 가야사 복원 강조
묻혀진 가야불교 관심·연구 급물살

은하사·칠불사 등 경남 13개 사찰과 유적
인도 6개 도시에서 가야불교 뿌리 찾아

김경수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 자암 등 거론,
가야불교 인정 받는 날 올 것” 강조



■삼국유사 기록에도 신화로 치부된 '가야불교'

지난해 11월 '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를 준비할 당시만 해도 허황옥과 그의 오빠 장유화상이 불교를 가야에 직접 전래했다는 가야불교에 대한 관심은 불교계 밖으로 크게 외연을 확대하지 못한 단계였다.
 

▲ 음영이 뚜렷했던 초선대 마애불의 30여 년 전 모습.

고려시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통해 가야불교에 얽힌 이야기를 역사의 기록에 남긴 후 724년이 지났지만 가야불교는 여전히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가야불교 복원을 위한 시도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꿰지 않으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구슬처럼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사전취재를 하면서 경남, 부산의 가야사 전공교수, 연구원들을 만났다. 그들의 입장은 삼국유사의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가야불교가 등장하는 '가락국기', '파사석탑조' 등은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금관가야의 건국시기 등 가야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영식 인제대 고고역사학과 교수도 가야불교의 실존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교수는 가야불교의 유력한 물증으로 거론되는 파사석탑에 대해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따르는 한, 파사석탑을 허황옥의 도래에 직접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남쪽 바닷길을 거쳐 가야에 전해지던 선진문물의 한 갈래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며 인도와 관련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아직 가야불교 관련 유물, 유적 가운데 가야시대로 추정되는 국가지정 문화재가 드문 현실도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했다.
 


■실체 규명 나선 이들을 만나다
 
하지만 주류 역사학계의 철옹성 같은 벽 위에 낙수를 떨군 이들이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허구로 치부되기도 하는 가야불교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나섰던 지역의 선구자들을 하나둘 만나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1960년대 식민사관을 벗어나려는 민족주의와 지역의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가야불교를 발굴하려 한 배석현 선생의 선구적 활동은 1970·80년대 허명철 조은금강병원 이사장, 은하사 주지 대성스님 등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허명철 이사장은 1986년 지역민 70여 명과 함께 '가야문화연구회'를 창립했다. 허 이사장은 김해를 비롯해 경남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야 흔적을 답사하는 한편 매년 가야사 학술강연회를 진행했다. 그는 가야사와 가야불교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30년 넘게 은하사를 지키며 가야불교의 가능성에 천착한 대성스님은 장유, 신어산, 불암동 지명을 중심으로 가야불교의 원류를 파악하려 했다.
 


■인도서 확인한 가야불교의 가능성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그 믿음의 뿌리는 무엇인지, 현장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유력한 가야 사찰터로 추정되는 '왕후사지'부터 신어(神魚)와 신어산으로 유명한 '은하사', 허왕후와 수로왕이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흥국사'(옛 명월사)를 답사했다.
 
그외에도 인도로부터 무탈한 항해를 감사하며 세웠다는 '해은사', 거등왕이 어머니를 그리며 창건했다는 '모은암', 장유화상이 불도를 닦으며 수행했다는 '장유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야불교와 관련성을 강조한 봉하산의 '자암', 거등왕의 초상으로 알려진 '초선대 마애불과 불족', 과거 김해지역 최대지역 사찰이었던 '감로사지' 등 지역의 유적을 샅샅이 돌아보며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았다.
 

▲ 3500년 된 망고나무가 있는 인도의 비댜샨카라 힌두사원. 불교사원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김해 뿐 아니라 가야불교 연기설화가 전해오는 경남 사찰에서 2000년 내력을 발견하러 보폭을 넓히기도 했다. 7왕자가 성불했다는 하동 '칠불사', 수로왕 재위 창건했다는 밀양 '만어사'와 인도에서 왔다는 맷돌 모양의 요니가 있는 밀양 '부은암', 인도 파사석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는 남해 '보리암' 등을 답사했다.
 
9개월에 걸친 국내답사에 가야불교에 대한 주류학계 학설을 뒤엎을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답사를 통해 부은사의 창건 내력을 담은 40여 글자가 새겨진 암막새가 최근까지 존재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는가 하면, 잊혀진 감로사와 풍화로 형체를 잃어가는 초선대 마애불의 긴박한 보존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야불교를 찾는 여정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허왕후 흔적과 가야불교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보름 동안 인도 북부와 남부 지역을 찾았다. 김해시 자매도시이자 힌두교 성지인 아요디아(아요디야), 갠지스강의 도시 바라나시, 아쇼카 대왕의 찬란한 불교 유적을 남긴 사르나트, 부처가 진리를 깨달은 보드가야, 한국어와 유사성을 가진 타밀어를 쓰는 남부의 첸나이를 차례로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인도 북부 유피주에 산재한 쌍어문양, 찬란했던 고대 인도불교 흔적 그리고 해양교류 실체와 마주하면서 가야불교의 실존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탄력 받는 가야불교 복원
 
가야불교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기존 사료, 유물 중심 방법론을 탈피해 허황옥 이야기와 가야불교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 학자가 바로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이다. 197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 이사장은 1994년 김수로왕비 허황옥을 시작으로 다양한 저작을 통해 허왕후의 인도 도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 첸나이 주정부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고대 불상을 감상하고 있다.

그는 지난 여름 김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판적인 이들은 허왕후 이야기와 가야불교를 후대 사람들이 소설로 삽입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가야사 전공자가 인도에 가서 아요디아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이는 드물다. 역사학, 고고학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천착하지 않는다. 사학자 중에서 중국 보주를 가본 사람이 얼마나 있나? 허왕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인도지역을 제대로 답사한 사람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강조가 촉매제가 되어 가야불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 8월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가야사와 가야불교사의 재조명' 학술대회에는 불교계 뿐 아니라 김해종친회, 일반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김경수 의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봉하마을을 소개하면서 자암, 부은암, 모은암 등 가야불교에 얽힌 사찰 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직 역사로서 인정받지 못한 부분은 있지만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출범한 가야불교문화진흥원의 이사장 인해 스님은 "가야불교가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가야문화의 중요한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 가야사 복원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라며 "가야불교는 여전히 묻혀있는 역사다"고 강조했다. 묻혀진 가야불교의 파편들이 햇볕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끝>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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