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따라 비포장도로 달려
해발 3500m 송쿨호수 도착

우연히 도움 받은 현지 부자 따라가
‘유르트’에서 하룻밤


어미 말 젖에서 갓 짠 마유 따뜻하고
고소한 맛 인상적

행동 느려 부리기 어려운 당나귀
“뭐 서두를 것 있나”


아빠랑 나란히 누운 호숫가서 올려다 본 키르기스 밤 하늘
‘세상에는 저렇게나 환히 빛나는 별들이 많았구나’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약 200㎞를 달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한국음식을 먹지 못해서 그런지 한국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우리는 비슈케크에 도착하자마자 '호반'이라는 한국식당을 찾았다. 아빠는 육개장을, 나는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 이식쿨호수 전경.


호반 사장은 원래 강원도 춘천에서 식당을 했는데, 10년 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손님 중에는 현지인들도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외국에서 유명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참 열심히 일을 하며 사는 것 같았다.

아빠와 나는 오랜만에 시내 호텔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제일 큰 호수, 이식쿨로 향했다. 이 나라 말에 '호수'라는 단어 끝에는 '쿨'이나 '콜'이라는 말이 붙는 것 같았다. 키르기스스탄에는 바다가 없다. 이곳 사람들에게 이식쿨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장소다. 호수 건너편에는 아주 높은 산들이 쭉 이어져 있다. 아빠는 그 산들을 가리키며 천산산맥이라고 말했다. "저 산맥을 넘으면 중국"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 최지훈 군이 이식쿨호수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몽골에서는 전통천막집을 '게르'라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르트'라고 불렀다. 유르트에서 하룻밤 묵으려면 우리나라 돈 1만 5000 원이 필요했다. 여러 명이 함께 자도 내는 돈은 똑같았다. 우리는 바다 같은 호수 주변에서 유르트를 빌려 이틀을 지냈다.

유르트 주인 아주머니에게는 아북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아북 형은 비슈케크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지금은 방학이어서 집에서 부모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항상 저녁식사를 하기 2시간 전 쯤 구운 빵과 '차이'라는 차를 형에게 간식으로 내어 줬다. 그 때마다 우리를 불러 함께 먹자고 했다. 차이는 한국에서 본 홍차와 비슷해 보였다. 설탕 또는 딸기 같은 열매 잼을 섞어 먹으면 아주 달고 맛있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늘 이렇게 간식을 챙겨 먹는다고 했다.

아북 형에게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촌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저 멀리 눈 쌓인 산이 보였지만 춥거나 덥지 않고 온도가 딱 좋았다. 아빠는 "여기가 바로 천국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틀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 최지훈 군이 해발 3500m에 위치한 송쿨호수를 향해 가다 산 정상 지역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는 다시 '송쿨'이라는 호수를 향해 길을 나섰다. 비탈진 산길이 이어졌다. 이식쿨은 1500m 높이에 위치한 호수였지만 송쿨은 그보다 훨씬 높은 해발 3500m에 있다고 했다. 아주 높은 산으로 알려진 백두산도 높이가 2744m라고 하는데 얼마나 높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산 사이로 난 길을 조심조심 따라 올라갔다. 드디어 송쿨 호수가 나타났다. 주변에는 녹지 않은 흰 눈이 남아 있었다.

이런 곳에는 마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호텔 같은 숙소도 없었다. 아빠와 나는 '텐트를 쳐야 하나. 아니면 유르트에 가서 재워 달라고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 때 눈앞에 길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나타났다. 건너기 전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잠깐 세워뒀다. 그런데 그만 오토바이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아마도 바닥이 물렁해서 그랬던 것 같다.

넘어진 오토바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짐을 다 풀어야 한다.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말을 탄 두 사람이 달려왔다. 그들이 도와준 덕분에 짐을 풀지 않고 쉽게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자, 그들은 유르트에서 재워줄 터이니 따라오라고 했다. 무척이나 감사했다.

두 사람도 우리처럼 부자지간이었다. 아들은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다. 이름이 주르마라고 했다. 주르마 형은 이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말을 정말 잘 탔다. 말을 쉽게 오르내렸고 기승도 자유자재로 했다.

형 집엔 말들이 참 많았다. 한 어미 말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들을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었다. 한 번은 주르마 형의 어머니가 말 젖을 짜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망아지에게 먼저 어미젖을 물리더니 재빨리 떼어냈다. 그리고 바로 젖을 짰다. 어미 말은 아직 새끼가 젖을 물고 있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내게 말 젖을 맛보게 해 주었다. 우유는 많이 먹어봤지만 말 젖은 처음 마셔봤다. 바로 짜서 그런지 따뜻하고 고소했다.
 

▲ 최정환 씨 부자가 현지에서 만난 주르마 가족에게서 음식을 대접받고 있다.(왼쪽) 주르마의 어머니가 말 젖을 짜는 모습.


주르마 형 집에는 당나귀도 있었다. 당나귀는 말보다 작아 올라타기가 쉬웠다. 하지만 부리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가자고 해도 꿈쩍 하지 않았다. 주르마 형이 달려와 뭐라고 소리를 치니까 그제야 천천히 조금씩 움직였다. 당나귀는 말과 달리 행동이 느렸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키르기스스탄 송쿨호수 지도.

주르마 형과 실컷 놀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됐다. 높은 곳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척 아름다웠다. 아빠는 별 사진을 찍는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주위에 도시가 없으니 다른 어떤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오직 밤하늘의 별들만 반짝였다. 몽골에서도 밤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지만 그 땐 보름달이 있어 여기만큼 반짝이지는 않았다. 이곳 키르기스스탄 송쿨에서 바라본 별은 몽골에서 본 것보다 적어도 10배는 더 밝게 빛나 보였다. 김해뉴스 최정환 최지훈 부자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