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수의 개념을 익힐 때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덧셈과 뺄셈이었다. 더하기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빼기는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초등학교 시절엔 수학을 싫어했고, 덧셈보다는 뺄셈이 더 어려웠다. 그래도 학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수학이라 열심히 했고, 어머니의 가정 학습 덕분에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수학은 다시 어려워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현대는 셈에 밝고 덧셈과 뺄셈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그 방면에 밝지 못해서 이렇게 주변인으로
재작년, 다우들과 나뭇잎을 다 떨군 가로수가 오스스 떠는 계절에 목공방을 찾았다. 따끈한 차와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고재 다탁에 눈길이 모였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묵직한 목재 결이 탐났지만, 다탁 끄트머리에 붙여진 만만치 않은 가격에 고향 빈집 대문이라도 떼어 와서 다탁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농담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진열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오도카니 앉아있는 그릇이 눈에 띄었다. 명판에 적힌 이름이 '보듬이'다. 두 손 가득 잡힐 크기로 구 윗부분이 조금 잘린 듯하다. 찻잔이라 하기에는 크고 그릇이라
돌아보니 김해 정착 이십년이 넘었다. 안양에서 태어나 삼십년을 살다가 부산에서 십년을 그리고 김해에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김해를 알기 전 김해라는 곳은 교과서에 수록된 김해평야라는 어휘 하나로 인식된 지역이었다.부산에서 살다가 김해로 온 후 한동안 나는 김해사람이 아니었다. 당시 운행하던 이마트 셔틀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나가 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했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나러 부산을 들락거렸다. 김해는 내가 잠을 자는 곳이지 생활문화공간이 못되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도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은 소도시였다
세상이 어떻더란 말 하지 말고, 세상이 뭐 같더란 말 하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자.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은 올 것이니, 이 사람과 살았으면 저 사람과 살았으면 하는 후회하지 말고 살자.돈 많이 벌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자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 해 본 적이 있는가? 왜 사는지 고민하고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 해 본 적이 있는가?사람의 삶, 인생이란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순간을 영원처럼 살도록 노력하고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아가며, 작은 것에도 소중함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에게 정성을
'영차, 영차' 구령에 맞춘 시끄러운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축구장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팀을 위해 투혼하는 모습이 내 발길을 잡는다.줄다리기는 대개 커다란 운동장이나 동네 널찍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선수와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성이 삼위일체가 되어 역동적인 경기의 진수를 자아낸다. 자기편이 이기기 위해 같은 편 사람들은 사력을 다하여 힘을 보탠다. 개인은 완전히 내려놓고 집단을 위해 온전히 사투하는 모습이다.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양 팀의 응원단장은 자신이 직접 줄다리기를 하는 양, 온몸
인생 50줄에 입문하여 맞이하는 사계절(四季節)은 10대, 20대에 미처 깨닫지 못한 굴곡 많았던 삶의 조미료를 첨가하니, 보석보다 더 빛나고 질그릇처럼 중후하고 신비롭기만 하다.봄은 입학, 졸업, 출발의 존귀함을 일깨워주고, 여름은 삶의 뜨거운 열정을 깨닫게 하며, 사색의 계절인 가을은 그리움과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순화시켜 주고, 겨울은 사람과 사람들의 36.5℃체온을 통해 나눔과 온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계절이라 생각한다.이처럼 사계절(四季節)의 조화로움이 있기 때문에 1년 365일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는
다사다난했던 기해년이 물러가고 경자년의 새해가 밝았다.유난히도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또 한 해의 소망을 빌어본다.전년에 빌었던 소망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하였더라도 다시 새로운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위로가 된다.해가 뜨고 지고,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온다. 해마다 달력을 새로 걸면서 사람들은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느낄 것이다. 이천 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라고 온 지구촌이 들썩거리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새 천 년의 이십 년 문턱에 섰다. 하루 스물네 시간, 한 달,
참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반나절 동안 견디던 통증이 나를 짐 부리듯 털썩 내려놓는다. 달래주려고 어설피 손댔더니 더 열불을 낸다. 오늘은 터뜨리기로 작정한 모양이다.언제부턴가 오른쪽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양말을 벗어보니 발가락 끄트머리가 벌겋게부풀어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 파고드는 발톱을 삼각형으로 잘라내고 소독하는 것으로 버티었는데 결국 동티가 났다."어허 우짜노. 마취하면 좀 아플낀데."의사 말이 끝나자마자 뚝딱 치료가 끝났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걸리적거리던 유치를 빼던 유년의 기억처럼 골칫거리가
가을 끝자락 11월 29일 오후 4시.진영 한빛도서관에서는 해방공간 시기에 행동으로 실천했던 지식인으로, 농촌계몽 운동가로,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교육의 선구자로 한얼학교를 설립한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선생님의 학술세미나가 열렸다.한 달 전부터 진영 거리거리는 강성갑 학술세미나 현수막이 한얼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라 참석이 어렵겠다는 아쉬운 마음뿐이었는데 우연찮게 시간이 났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자가 많았다.1950년 8월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쓰고 국군의 총에 의해 총살당한지 70년.기독교의 정의와 복음을 전하는
TV 켜기가 두렵다. 며칠간에 일어난 흉측한 사건과 사고들을 듣고 보면 다음날 시작하는 하루가 무거워진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저급한 행동, 불안한 경제, 각종 범죄가 난무한 사회는 문제가 된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들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차마 입으로 쏟아 내기조차 무서운 것은 천륜을 저버린 존속 살인이다.유교 도덕에서 규범화되어 있는 기본 덕목은 삼강오륜이다. 삼강오륜의 기본은 가족이다. 이것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사람의 품성이 변해간다고 해야 할지 인간의 탈을 쓴 소수인의 행동에 말문을
25층의 거대한 시멘트 덩치도 휘몰아치는 겨울 밤바람에는 몸살이 난 듯 '잉잉' 소리를 내고 있다. 베란다 창틈 사이로 들어오려 다툼하는 바람들이 산귀신들의 혼령인 양 귀신소리를 낸다. 산자락을 잘라 지은 아파트라 죄를 짓고 사는 기분이다. 밖의 광란과는 달리 방안은 평온하다.결혼을 앞둔 어느 해 겨울, 우리는 그해 12월의 매서운 밤바람을 아무 보호막 없이 맨몸으로 부대껴야 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살림을 차릴 방을 얻으러 다녔다. 12월 서울의 밤은 차고 매서웠다.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엄마, 나 오늘 학원 안가면 안 돼?"아들의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결석은 엄마 사전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말이었다. 2박 3일 수련회에 다녀온 여독도 풀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영어 숙제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마음은 알지만 쉽게 허락하고 싶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각자의 말만 하고 홱 등을 돌려버렸다. 남편의 외출로 간단히 먹겠다고 선택한 짜장 라면이 다 불어터지고 있었다.돌아보면 내게도 저런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보다 유독 나만 많이 하는 것 같고, 나한
바람이 분다. 사시사철 불어오는 바람, 우리는 늘 바람 속에서 살고 있다. 따스한 산들바람에 봄이 오고, 습하고 더운 남동풍이 여름을 몰고 온다. 남쪽에서 부는 선들선들한 건들마가 가을을 예고하고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 벌써 겨울이다.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이렇게 계절마다 다른 바람이 불어 피부로 직접 바람을 맞는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그 바람에 순응하게 된다.봄바람엔 무언가 가슴이 설레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면 왠지 쓸쓸한 고독감을 느낀다. 여름 태풍이나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나름 적응하고 단련이 되어 간다.사물에 대
6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이사를 하면서 떠나온 부산 동구 초량을.작은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했다. 가보자가보자 말만 하고 아이가 대학생이 되도록 못 가보고 시간이 흘렀다. 김해에서 부산 초량까지 40분이면 갈 거리를 살다 보니 발걸음 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아이가 그렇게도 먹고 싶다는 그 음식점의 쭈꾸미. 우리가 단골로 드나들 때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 가게가 곧 문을 닫을 거라 생각을 했던 그 집. 낙후된 도시로 군데군데 재개발이 시작 되었다는 소식에 당연히 헐렸을 거라 생각을 했다. 주말만 되면 먹고 싶다는 그 집의
반에서 15등이라는 성적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성적순위가 60명 중 10등에서 15등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그랬던지 고교시절 늘 스스로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평범'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떠나, 당시 학교에서는 성적 순위가 그 사람의 평가기준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한다.사실 평범하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리라. 그 대척점에 고난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반에서 15등', '
여자를 보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 기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왔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누군가가 이상형을 물어오면 망설임 없이 "키 크고 예쁜 여자"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되돌아오는 말은 "야! 꿈 깨"였다. 그때는 그야말로 꿈속에서 헤맸던 시절 같다. 결혼한 후에는 명랑한 여자가 아름답고, 이립을 지나 불혹이 되어선 마음씨 곱고 착한 여자가 아름답고, 지천명에는 어른을 공경하는 정숙한 여자가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키가 크고 작다든지 얼굴이 예쁘고 못생겼다든지 몸매가 뚱뚱하고 날씬하다든지
인간의 고뇌처럼 길고 질긴 여름이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 몸과 마음에서도 중년의 나이가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여름에 공식적인 워크숍 참석차 대구로 가는 기회가 있었다. 열차에 몸을 싣는 순간, 내 스무 살 적 비망록 속의 추억이 파노라마로 다가왔다.이십대는 가장 순수했던 청춘의 시절이다. '대구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과 딸도 20대 청춘을 보낸 곳이다. 우리 가족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더욱더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진영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7년 동안 완행열차의 푸른 시트에 청춘을 맡
앞산에는 산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이 수런거린다. 태풍 타파가 지나간 하늘에 구름이 각종 형상을 만들며 그 수런거림에 동행한다. 오늘같이 맑고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갖가지 다양한 구름 따라 내 마음의 붓도 함께, 무지갯빛 수채화가 그려진다. 가끔 동심에 젖는다. 구름 속을 눈여겨보면 청둥오리가 하늘 호수에다 물장구치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보인다. 동쪽 하늘에는 구름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백설공주 이야기 속의 마귀할멈도 보이고, 서쪽 하늘에는 마귀할멈이 백설공주를 질투해 독약이 든 사과를 먹여,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구해
몇 해 전 70대 부부가 자식들의 귀성 고생을 들어주려고 상경길을 재촉하다가 전철역에 설치된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변을 당했던 적이 있다. 1층 승강장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던 리프트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쇠줄이 끊어지면서 7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하여 할머니가 사망하고 할아버지는 양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어이없게도 설치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 시설에서.그래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애인들이 리프트를 승강기로 교체해 달라며 이동권 확보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우선 이동이 먼저
결코 끝나지 않을듯하던 한더위도 처서를 지나며 고개가 꺾였다. 여름햇살과 비에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 화초들 속에서 코끝을 스치는 기분 좋은 향이 보인다. 어딘가 싶어 고개 숙이니 뜻밖에도 난이 꽃대를 네 개나 피워 올렸다. 정갈하지 않은 베란다에 방치하듯 내어둔 화분인데도 장하기만 하다. '미진(微塵)도 가까이 하지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는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시조구절이 떠올라 오히려 난에게 미안하다.이십년 전쯤이다. 진영에서 버스를 타고 사군자를 배우러 오시던 일흔 초입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먹을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