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문학관을 상징하는 조형물. 극작가 김우진과 차범석의 사진이 보인다.

 

‘낭만적 계몽주의’ 거부한 문예비평
자산관리 사장으로 문학·연극에 몰두

소프라노 윤심덕과 현해탄에 몸 던져
영화·드라마로 되살아난 애절한 로맨스 


 

▲ 문학관 2층에 마련된 김우진관.

우리나라 연극계에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담은 근대식 이론을 도입했던 극작가. 최근 TV 드라마 '사의 찬미'에서 소프라노 윤심덕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으로 더욱 잘 알려진 극작가 겸 연극비평가 김우진을 소개하는 공간은 목포문학관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공의 뱃노래'가 울려 퍼진다는 '삼학도'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한 문학관으로 들어가면 첫머리에 극작가 김우진의 어록이 걸려 있다.
 
"창공은 내 위에, 살려는 힘은 내 안에". 하늘처럼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타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가의 아버지 김성규를 소개하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조선 말기 토지개혁업무를 주도한 데 이어 홍콩 등 5개국 전권 대사를 역임했던 개화파 지식인 김성규가 사용했던 관복과 신발 등이 눈길을 끈다.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이었지만 서구식 계몽사상에 눈을 떤 문학청년 김우진과의 갈등을 암시하는 것일까. 바로 옆자리에 꾸며 놓은 김우진의 집필실에 놓인 유품이 병풍 몇 폭에 불과할 정도로 썰렁한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집필실 맞은 편에는 서구식 가치관이 처음 도입 되던 시기에 극적인 삶을 살다간 작가 김우진의 생애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아버지가 군수로 일하던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난 김우진. 나라가 문호를 개방하는 흐름을 타고 토지 등 자산 관리 회사를 차려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열여덟 살때 구마모토 농업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우진은 스물두 살 되던 1919년,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한다. 때마침 3·1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사회 분위기에 고무된 청년 김우진은 "이광수 류 문학을 매장하라"는 비평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소개글이 인상적이다. 대표작 '흙'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주장하던 온건파 지식인 춘원 이광수를 비판하면서 강렬한 '계급 투쟁'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만석꾼에 가까운 대부호의 아들이 어떻게 계급 투쟁을 주장하는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 외국 소설 '영웅'을 번안한 자필 원고(왼쪽)와 연극 '인조 인간' 을 비평한 초고.


이후 김우진은 스물네 살 되던 1921년, 작곡가 홍난파와 성악가 윤심덕 연극인 한기주 등과 뜻을 모아 '도쿄 고학생과 근로자 동우회관'을 건립하는 기금을 모으기 위한 전국 순회공연을 기획했다는 해설이 이어진다. 부산에서 출발해 전국 25개 지역을 찾아가는 공연이었다. 훗날 숱한 염문을 뿌린 성악가 윤심덕과의 첫 만남이 이뤄진 공연이었지만 당시 김우진은 이미 결혼해 세 살 된 딸을 둔 유부남 신분이었다.
 
이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목포로 돌아간 김우진은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자산관리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한다. 이때부터 김우진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목포 문예 동인들을 규합해 동인지 '5월회'를 발간하고 희곡 '산돼지'와 '이영녀'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유달산 아래서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이영녀'는 무대에 올리는 등 진보·좌파 계열로 흐르고 있었다고 했다. 
 
연보 옆에는 김우진이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 아들 김방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바로 그 사진 속 주인공이 훗날 언어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김방한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라고 했다. 이처럼 부러울 것이 없고 다복한 삶을 살았던 극작가 김우진이 스물아홉 살 되던 1926년 8월 4일, 연인이었던 소프라노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 날카로운 문예비평으로 주목 받은 극작가 김우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안정된 경제력에다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넣을만큼 문학적 재능까지 갖추었던 젊은 극작가 김우진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건너간 일본에서 윤심덕으로부터 '자살하고 싶다'는 전보를 받고 깜짝 놀란 김우진이 만류하기 달려간 것이 마지막 길이었다"는 연극인 홍해성의 증언을 옮겨 놓은 연보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다.
 
게다가 김우진과 윤심덕이 바다에 몸을 던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없고,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에 고민하던 두 연인이 "파랑새를 찾아서 머나먼 이국땅으로 달아났다"는 등,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연인 윤심덕이 남겨 둔 노랫말과 함께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는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목포=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전남 목포시 남농로 95.
△ 남해고속도로(252㎞)를 타고 가다 무영로(8㎞)로 갈아타면 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6시.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휴관.
②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061-270-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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