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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에 꺾이지 않는 풀꽃처럼 살다간 시인 조태일

기사승인 [405호] 2019.01.08  15: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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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 조태일시문학기념관

▲ 시문학관기념관 마당에 깃발 처럼 걸려 있는 조태일 시인의 작품들.

 

태안사 대처승 아들로 태어나
군사정권에 맞선 저항 시인으로


민초 삶을 시(詩)적 정서로
구속, 시집판매금지 등 시련


 

▲ 조태일 시인(1941~1999)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시(詩)적인 정서로 승화시킨 시인. 1970~80년대 개발독재에 맞서 인간적인 순수성을 노래했던 민중 시인 조태일을 기념하는 문학관은 전남 곡성군 소백산맥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강바람이 차가운 섬진강 옆길을 따라서 찾아간 조태일시문학기념관. 신라 경덕왕 때 지었다는 태안사 입구에 건립된 문학관 입구 마당에는 시인의 혼이 담긴 작품들이 샛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걸려 있다.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덕배기면 어떻고/ 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민초들을 사랑했던 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노랫말이 정겹다. 황톳빛 나무로 지은 문학관 전시실로 들어가면 시인 조태일의 삶과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서 주지 스님의 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 때 터진 여순사건을 피해 광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2년 만에 벌어진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는다. 이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조태일은 경희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4년, 스물네 살 때 '아침 선박'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한일국교정상화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학가를 휩쓸던 시절에 등단한 시인 조태일.     
 

▲ 조태일시문학기념관 정문.
▲ 조태일시문학관기념관 내부 전경.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대표작 '국토 서시'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정서의 엿볼 수 있다.
 
이후 스물 아홉 살 때인 1969년, 편집 주간으로 일하던 월간 문예지 '시인'이 정부 당국의 압력으로 폐간되면서, 시인 조태일의 삶은 더욱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곧은 길 마다하고/ 산모퉁이 바짝 붙어/ 돌아돌아 구부려간다…/ 노을 타는 강물 아래…/ 단풍물에 흠뻑 물들어/ 산비둘기 산까지 등에 업고/ 느린물과 함께/ 자장자장 누워서 간다"
 
이처럼 맑고 순수한 정서를 가진 조태일이었지만 언론의 자유가 없던 시대를 살아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인의 어깨는 무거워져갔다. 1974년에 출범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선 간사직이 맡겨진 것이다. 이후 서른일곱 살 되던 1977년엔 동료 시인 양성우가 쓴 시를 모은 시집 '겨울 공화국'을 발간했다는 이유로 선배 시인 고은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제5공화국이 출범한 1980년에도 마흔 살의 나이에 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시인이 남기고 간 유품전시관.


 
"사람들은 풀꽃을 꺾는다/ 너무 여리어 결코 꺾이지 않는다// 피어날 때 아픈 흔들림으로/ 피어있을 때 다소곳한 몸짓으로/ 다만 웃고만 있을 뿐…"
 
이처럼 시련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웃음을 잃지 않았던 시인 조태일. 만년엔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와 광주예술대학장을 지냈다는 기록이 적혀 있지만, 그처럼 안락한 시절은 잠시였다. 오십 대 초반에 찾아온 지병에 시달리던 시인인 1999년 쉰아홉 살에 불과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내 유서를 20년쯤 앞당겨 쓸 일은 1999년 9월 9일 이전이라고…"(1968년, 간추린 일기)
 
과연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았을까. 실제로 시인은 1999년 9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4년, 동료 시인 이오우가 기념시를 쓸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돌담을 딸 원추리되고/ 민들레 햇바라기 뒤는 뒷간/ 태안사 앞마당 오솔길로 이어지고…/ 번뜩이는 아침 선박이/ 꺾이지 않는 향으로 온다/ 꺼지지 않는 노래가 된다"
 
곡성=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38.
△ 남해고속도로(158㎞)를 타고가다 순천로(13㎞)로 갈아탄 후 태안로(6㎞)로 옮겨타면 된다. 약 2시간 2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5시. 하절기(3월~10월)는 오후 6시 폐관.
②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 연휴는 휴관. 061-362-5868.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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