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작은문학관 전경. 1930년대 초반에 지은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문학관이다.

 

 일본 헌병대장 집 개조한 문학관
 문학 전공 교수 사재로 만든 공간

 대구서 활동한 시인 흔적 되살려
 '시인의 딸' 육성 담은 동영상 눈길



대구의 도심 뒷골목에서 마주친 '264작은문학관'. 일제강점기 비타협적인 무장투쟁 노선을 걸었던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던 민족 시인 이육사의 삶과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문학관은 조그만 목조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30년대에 지은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했다는 '264작은문학관'. 1층 현관으로 들어가면 시인의 사진과 함께 264작은 문학관을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대구에서 20년 가까이 문학, 사회 활동한 시인 이육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학관입니다. 문학관 명칭은 264라는 시인의 필명에서 따 온 것입니다."
 

▲ 이육사의 사진이 걸린 문학관 안내 데스크. 박수현 경북대 교수의 모습이 보인다.
▲ 이육사 관련 자료들이 전시된 2층 전시실.

 
마치 커피숍 카운터처럼 깔끔하게 꾸며진 안내데스크에서 콧수염을 한 50대 남성이 264작은문학관 설립자 겸 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개인 돈 3억 원을 들여서 '264작은문학관'을 설립했다는 박수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인 이육사가 열여섯 살 때 대구로 이사 온 이후 마흔 살 때 베이징 일본영사관에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너무 적은 현실이 안타까워서 이육사 문학관을 건립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시인이 대구에서 맨 처음 머물렀던 북성로를 중심으로 문학관 건립 장소를 찾아다니던 박 교수가 사들인 건물이 일본 헌병 대장이 살았다는 일본식 가옥이라고 했다.

▲ 264작은문학관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

"공사 도중에 일본 헌병 대장이 묻어 둔 보물이 나오면 반씩 나누어 가진다."는 조항을 매매계약서에 적어두고 사들인 일본식 옛집. 하지만 보물은 없었고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 황제가 물러난 1907년에 만든 1전짜리 동전 한 닢을 발견한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하지만 천장을 도배한 신문지 중에서 '영천 군수 이종수'가 협찬한 광고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
 
바로 그 이종수 영천 군수(재임 기간 1929년 2월~1931년 12월)가 청마 유치환과 주고받은 연애 편지를 책으로 엮은 '사랑하였기에 행복하였노라' 펴냈던 여류 시인 이영도와 그의 오빠였던 시조 시인 이호우의 아버지라는 박 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면 시인 이육사가 살다간 발자취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호적상 본명이 이원록이라는 시인은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기 한 해 전인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나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고 했다. 스무 살 때 일본 도쿄로 건너가 고등예비학교에 입학했다가 스물두 살 때 베이징 중국대학에 입학한 기록이 나온다.
 
이후 스물세 살 되던 1927년에는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형 이원기 및 동생 원일과 함께 연루돼 1년 6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대구 형무소에서 받은 죄수 번호 264가 시인의 필명이 되었다는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이후 형 이원기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 때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서화가였던 원일과 문학평론가였던 원조 및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던 원창 등 동생 3명은 8·15 광복 후 월북을 단행, 생사를 알 길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막내 동생 원홍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요절했다는 사연이 이어진다.   
 

▲ 문학관 안쪽에 마련된 느린 우체통.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애가 좋기로 소문났던 시인의 6형제가 경주 불국사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인천 월미도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포토존의 배경 화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은 모두 디지털 사진 전문가가 합성한 것이라고 했다. 비록 만든 사진이지만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70년 만에 6형제가 다시 모인 셈이라고 했다.
 
1층 휴게실로 내려가면 "일본 헌병이 살던 집에 항일 투사였던 아버지의 삶과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문학관이 세워진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시인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 씨의 멘트를 담은 동영상이 마련되어 있다.
 
조국의 광복을 염원했던 시인의 노랫말과 함께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여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대구=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대구시 중구 북성로 1가.
△ 남해고속도로(3㎞)를 타고 가다 중앙고속도로 지선(10㎞)으로 갈아탄 후 중앙고속도로(81㎞)로 옮겨타면 된다. 약 1시간 3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② 관람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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