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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 남기고 떠난 천재시인 서정주

기사승인 [396호] 2018.11.06  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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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 미당시문학관

▲ 시인의 마을에 마련된 미당시문학관. 작은 폐교 건물에 담쟁이 덩굴이 정겹다.

 

             ▲ 미당 서정주(1915~2000)

 광주학생운동 배후로 중앙고보 퇴학
 스물여덟부터 일본 찬양한 '친일문인'

 아내 사별 후 두 달 보름 만에 떠나
"하늘의 것, 우주의 것이 됐다"는 언어



한 송이 국화꽃을 남기고 떠난 천재시인. 다른 한편에서는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시류에 영합한 '친일 문인'이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미당 서정주의 삶과 작품세계를 알려주는 문학관은 전북 고창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변산반도를 바라보는 시인의 고향 마을에 마련된 '미당시문학관' 현관에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는 시인의 어록이 걸려 있다.
 
서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들녘을 물들이는 시인의 고향 질마재를 예찬하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던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숱하게 많은 논란을 빚었던 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말이었을까. 전시실로 들어가면 시인이 붓글씨로 쓴 액자가 걸려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최근 복원된 서정주 생가.

  
8·15 광복을 맞이한 이듬해에 발표했다는 시인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의 전문을 옮겨 놓은 액자다. 모진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온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되돌아보는 사십 대 여인의 모습을 한 송이 국화로 그려냈던 시인 서정주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까.
 
전시실 벽면에는 서정주가 살다간 발자취를 시기별로 보여주는 연보가 걸려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는 시구절처럼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 서정주. 중앙고보에 재학 중이던 열여섯 살 때 광주학생운동의 배후 주모자로 몰려 퇴학당한 사실이 적혀 있다. 이후 스물한 살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스물여덟 살 되던 1943년부터 젊은 학도에게 자원입대를 권하고 자살특공대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을 예찬하는 친일작품을 쓴 기록이 남아 있다.
 

▲ 서정주 자필 시(위)와 시인이 사용하던 지팡이와 곰팡대.

 
"교복과 교모를 이냥 벗어버리고/ 모든 보람이냥 벗어버리고/ 주어진 총칼을 손에 잡으라/ 적의 과녁 위에 폭탄을 던져라…."
 
"그대, 몸을 싣고 날아갔다 내리는 곳/ 조각조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군 군함/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이처럼 민족을 배신하는 시를 쓴 사람이 과연 '천재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을 자격이 있을까. 이에 대한 서정주의 변명은 "쓰라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고, 모든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해방이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말로 요약됐다.
 
이 같은 서정주의 행적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양했다.

▲ 미당의 삶과 작품 세계를 알려주는 전시실(위)과 전망대로 올라가는 복도 계단길.

"아름다운 언어로 삶 전체를 뒤덮을 수는 없다."
 
"아름다운 시가 녹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 속에 후배 시인 김춘수는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는 말로 각종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에 나선 시민들을 총칼로 학살하고 출범한 전두환 정권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방송심의위원장까지 맡았던 김춘수에게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다.
 
문학관 안쪽에 재현된 서재에는 흰색 한복을 입은 시인의 사진 아래, 전시된 하얀색 고무신이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0년 10월 10일, 아내 방옥숙이 세상을 떠난 그날부터 음식을 거부한 후 두 달 보름 만인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과 이별을 고한 시인이 남긴 고무신이라고 했다.
 
서재 앞에는 시인이 만년에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1628개의 영문 스펠링을 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서재를 나와 '시인의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길. 복도 벽면에 걸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어록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미당의 언어는 이제 바다의 것, 하늘의 것, 우주의 것이 되었다."

김해뉴스 고창=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로 2~8.
△ 남해고속도로(157㎞)를 타고가다 호남고속도 로(59㎞)로 옮겨 탄 후 고창·담양고속도로(42㎞)를 이용하면 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관람 시간
① 오전 9시~오후 6시(동절기 11월~2월엔 오전 9 시~오후 5시)
②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 063-560-8058.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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