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복원된 신석정 생가. 초가에 툇마루가 소박하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거부한 선비
 자유당 땐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작품

'역사와 무관한 것을 경계' 원칙
 자연과 평화 노래한 시인 평가도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로 시작되는 노랫말로 이상향을 꿈꾸었던 시인. 목가적인 감성으로 자연을 노래한 전원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신석정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문학관은 전북 부안의 조그만 시골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인이 태어나서 자랐다는 초가 옆에 우뚝 선 문학관 마당에는 시인의 작품을 새긴 시비가 있다.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깊어 가는 가을, 들판이 금빛으로 물드는 계절에 찾아간 시인 신석정의 정서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시 구절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어선 문학관. 전시실 입구에는 '시대를 밝히는 촛불'이라는 붓글씨가 적혀 있다. 짙은 눈썹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시인의 사진과 함께 걸려 있는 안내글이 올곧은 선비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실 첫머리에는 시인의 좌우명이 걸려 있다.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 "높은 산과 흘러가는 물에 마음을 두고 산다"는 뜻을 지닌 한문 글씨에서 강직했던 시인의 성품이 드러난다. 부드럽고 여성적인 감성을 지녔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연출된다.
 

▲ 시인의 삶을 오롯이 옮겨놓은 문학관 전경.
▲ “4·19 정신을 되살리자”던 시인의 노래.

 
전시실로 들어가면 헤이그 밀사 사건이 발생했던 1907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청년기를 보냈던 시인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연보가 걸려 있다. 부안보통학교 시절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에게 모욕을 주는 일본인 교사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을 주도한 혐의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는 기록이 인상적이다. 1939년 첫 번째 시집 '촛불'을 발표할 무렵, 지식인 대부분이 친일부역자로 변절하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등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한 자세를 보여줬다는 소개 글이 이어진다.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정지하고/ 푸른 별이 모조리 떨어질지라도(중략)…./ 밤이 이대로 억만년이야 갈리라고"

일제의 탄압이 아무리 가혹해도 그 서슬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로 결의를 다지는 시 구절이 감동적이다.

8·15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시인의 발걸음은 변함이 없었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그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일본이 물러갔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을 감성적인 언어로 질타하는 노랫말이다. 그로부터 4년 후 6·25 전쟁으로 시집 '촛불'과 '슬픈 목가'의 판권을 쌀 두 가마에 넘길 만큼 참담한 고통과 시련을 겪을 때도 "역사와 무관한 것을 경계한다"는 말로 원칙을 지켰다는 소개글이 인상적이다. 4·19 혁명이 터지기 직전인 1959년.

 

▲ 부드러운 언어로 일제에 저항한 작품을 새긴 시비(詩碑).



"산도/ 강도/ 바다도/ 소리 없이 묻히는 어둠을 달라"며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에 온몸으로 항거한 시 구절이 눈길을 끈다.

과연 이런 신석정을 누가 단순히 목가적인 서정시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현실참여 민족 시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올 법한 대목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성실한 저항은 누구보다 시인에게 요구된다"던 시인의 어록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이에 대한 해답을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병상에서 쓴 마지막 시' 구절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백목련 햇볕에 묻혀/ 눈이 부셔 못 보겠다/ 희다지친 목련꽃에 번진/ 4월 하늘이 더 푸르다(중략)/ 가슴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백목련 낙화소리…."

김해뉴스 /부안=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선은1길 10.
△ 남해고속도로(87㎞)를 타고 가다 통영·대전고속도로(86㎞)로 갈아탄 후 익산·포항고속도로(55㎞)로 옮겨 타면 된다. 약 3시간 40분 소요.

*관람 시간
① 오전 9시~오후 6시(11월 ~2월은 오후 5시 마감)
② 매주 월요일(공휴일이 겹치면 그 다음날),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053-584-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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