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가 '깡패'입니다."

김해 회현동에서 만난 한 주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야시대 왕궁터로 추정돼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지역 인근에 사는 주민은 시의 부지 매입으로 내년 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할 처지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주민은 "'문화재'라고 하면 더 이상 반대할 수도 없이 다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관가야의 발상지인 김해 전역에는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방대한 문화재가 퍼져 있다. 실제로 지정된 김해지역 문화재는 약 80건이지만 김해 약 46만㎡가 문화재 보호구역이니 매장된 문화재의 양을 가늠해보기조차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앞마당에서 유물이 발견됐다'는 말이 김해에서는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역사와 문화의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은 김해시민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정작 '문화재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문화재는 곧 개발 제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지역의 경우 건축·개발 행위 전 시굴조사를 벌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숟가락이라도 발견이 된다면 공사 과정이 더욱 복잡해진다. 다른 이들에게는 조상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보물'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지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수년 전 김해의 한 교회의 건물 개축을 위한 시굴조사에서 우물터 흔적이 나와 정밀발굴조사를 해야 했다. 구산동 주택지 공사에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지석묘가 발견돼 공사가 장기화된 것은 물론 해당 부지에 대해서는 개발을 할 수가 없어 공원화해야 했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 법이 바뀌어 대지면적 792㎡·연면적 264㎡이하인 소규모 건축, 대지면적 2644㎡·연면적 1322㎡ 이하인 농어업·공장 시설물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시굴조사 비용을 지원해주지만 그 이상은 자비로 해야 한다. 주민 혹은 시공사 입장에서 황당한 점은 자비로 진행하는 시·발굴 조사에서 유물이 발견되더라도 이는 모두 문화재청으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기존에 있던 학교를 이전해야 하는 문제를 놓고도 지역사회에 갈등이 일었다.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힘을 합해 일군 '행복학교'가 사라지게 되자 구봉초 학부모들은 학생들과 함께 매주 학교 앞에서 촛불집회를 벌였다.

집회에서 학부모들은 "학교를 없애고 공원화하는 것이 문화재를 지키는 것인가", "과거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 옳으냐"며 문화재 보호를 위한 학교 이전 문제를 지역사회의 화두로 끌어 올렸다.

문화재가 있다고 꼭 학교나 주택이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주의 경우에도 문화재가 산재한 황남동이 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지만 첨성대 옆에 위치한 황남초는 관광객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도 70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다. 최근 학생 수가 감소해 학부모 설문조사를 통해 신도시 쪽으로 학교를 이전한다는 방침이지만 황남초 부지에도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논의 중이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성심여고도 마찬가지다.

가야사 복원을 통해 김해가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역사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성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화재가 지역민들의 삶을 침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김해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자부심이 되도록 문화재와 삶이 공존해 발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초지자체의 배려는 물론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민들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요구된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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