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가야 왕궁터 발굴 예정지인 고성 내산리 전경. 사진제공=고성군청

 
고성군, 향후 10년 장기계획 수립
남산·만림산 토성 등서 실시 예정
군비 5천만 원 투입해 용역 진행



소가야의 역사를 밝힐 왕궁터 발굴이 내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고성군 관계자에 따르면 고성군은 소가야 역사의 실체를 발굴, 복원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왕궁터를 발굴하기 위한 조사에 돌입한다. 고성군은 정부의 가야사 복원과 관련해 지난 6월 사업계획서를 도에 제출한 상태다. 계획서에 따르면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내산리고분군과 동외동패총 등은 물론 산업단지 조성 당시 발견된 남산·만림산 토성 등을 중심으로 소가야왕궁터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고성군은 내년 중 군비 5000만 원을 들여 전체적인 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고성군은 토지 매입, 발굴조사, 복원 등 향후 10년간의 장기 계획을 수립해둔 상황이다. 고성군 관계자는 "본격 발굴을 위해서는 사업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왕궁터 지점을 추정하고, 고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정확한 발굴은 불가능하다. 송학동고분군과 고성읍성, 출토 유물 등을 바탕으로 추정하면 남산 및 만림산 토성 인근이 주거지나 왕궁터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정확한 근거와 자료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토사학자인 하기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 소장은 "소가야와 관련된 문헌상의 뚜렷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지점을 특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추정만으로 왕궁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며 "한때 고성왜성을 소가야왕궁터로 오해해 혼란이 빚어졌던 것과 같은 상황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전 소장은 "소가야를 세운 말로왕이 도읍지인 고성읍에 둘레 10만 6777.2㎝ 높이 약 454.5㎝의 돌성을 쌓았다. 위치에 따라 동문, 서문, 남문이라 불렀다. 이 명칭에서 현재의 고성읍 동리의 명칭인 동내, 서내, 남내마을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헌상 기록은 없지만 동외동패총으로 미뤄볼 때 소가야시대 훨씬 이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군락을 이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보통 성곽이 조성될 경우 이전부터 그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점으로 추정해 본다면 읍성을 중심으로 소가야왕국 도읍지나 왕궁이 축조됐을 가능성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동외동패총의 아랫단에서 야철지가 발견됐고, 1995년에는 패총 중앙부 제사 유적에서 새 두 마리가 마주보는 청동장식이 발굴됐다. 또 회화면 일부 지역에서 야철지가 발견됐다. 게다가 고성의 토기가 서울 풍납토성 등에서 발견된 점 등을 미뤄볼 때 고성을 도읍으로 삼았던 소가야의 세력이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고성신문 제공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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