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씨 부자가 선교를 온 서울 새문안교회 정균오 목사 일행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우즈벡 국경 검사 기진맥진
카자흐, 존경받는 아사위 성지 찾아 깨달음 구해

항구도시 아랄스크 시끌벅적 과거 영광도 잠시
댐·보 건설로 아랄해 염도 상승 바다생물 멸종

세계2차대전 격전지 러시아 볼고그라드서 조우
한국 선교단체 사람들과 맛있는 점심 한끼 행복




우즈베키스탄의 국경은 짐 검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휴대폰에 저장된 파일까지  열어 검사했다고 한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려 검사를 받았다. 국경직원은 아빠와 내 가방을 일일이 하나하나 다 열어 검색했다. 지갑 안에 든 돈도 세어 그 액수를 종이에 적었다. 그렇게 2~3시간을 소비하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들어와 가장 먼저 '투르키스탄'이라는 도시를 찾아갔다. 투르키스탄은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쉼켄트'에서 약 1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는 아주 유명한 유적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이슬람교에서 마호메트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아사위의 영묘다. 아사위는 자신의 종교적인 깨달음을 투르크 토착어를 사용해 시와 설교로 풀어냈다. 사망 후 그의 무덤은 많은 이들이 찾는 성지가 됐고 1390년대 티무르 황제의 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내부에는 박물관처럼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 최정환-최지훈 부자가 투르키스탄의 유명 유적지 '아사위 영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르키스탄을 지나오니 이번에는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인지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에는 그저 잡초만 무성했다. 

사흘을 달려 '아랄스크'라는 도시에 닿았다. 여기엔 '아랄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주변의 커다란 강줄기 2개가 이곳으로 흘러든다. 과거 소련시절 강 상류지점에 수많은 댐과 보가 건설됐다. 그렇게 가둬둔 물은 인근 목화밭에 사용되고 지금은 예전 1/10 수준의 물만이 바다로 흐른다고 한다. 때문에 아랄해 염도가 올라 각종 물고기들이 멸종했고, 한 때 시끌벅적했던 항구는 이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지에 오기 전 지도를 볼 때 아랄해는 아주 크고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항구도시에서 바다는 수 백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었다. 한 때 고기잡이를 했던 배들도 이제는 야외박물관의 전시물로 남았다. 과거 이곳이 항구였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이곳에는 목화밭을 일구어서 행복해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다가 없어서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의 '어머니 동상' 앞에 선 최 씨 부자.

우리는 다시 서쪽을 향해 달렸다. '악토베', '오랄'이라는 도시를 지나 다시 국경을 넘으니 러시아가 나왔다. 러시아가 정말 넓긴 넓은 나라인가 보다. 벌써 세 번째 러시아에 입국했다. 신기하게도 어디서든 북쪽으로 올라가면 러시아로 통한다. 우리는 조지아로 가기위해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간 달려 우리는 러시아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 볼고그라드에 도착했다. 아빠는 오토바이를 정비소에 맡겼다. 나라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제대로 된 정비소도 없었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엔진오일도 갈았다.


오토바이를 정비한 후 우리는 볼고그라드에서 유명한 어머니 동상을 찾았다. 아래에서 위로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만큼 동상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 주변을 둘러본 후 주차장으로 가는데 한국말을 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동안의 여행경로는 한국인들을 보기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아빠와 나는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한국인들 중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계셨는데 서울 광화문 앞에 위치한 새문안교회의 정균오 목사님이라고 했다. 러시아에만 25년 간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행들은 한국에서 2주간 선교봉사를 하러 온 형, 누나들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서로 다함께 볼고그라드 전쟁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목사님은 이곳이 과거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과 소련군의 최대격전지였다고 설명했다. 이 전투에서 독일인 포로가 9만 명 발생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독일과 볼고그라드 간의 무역량이 현재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뤄지는 무역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지명이 스탈린그라드였으나 스탈린이 죽은 후 볼고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인근에 볼가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볼고그라드 사람들은 운전하는 습관이 러시아의 다른 도시 사람들과 좀 달랐다는 점이다. 보통의 러시아 도시에선 신호를 잘 지키고 보행자도 잘 보호를 해줬다. 그런데 여긴 신호등불이 노란색으로 바뀌면 정지를 하지 않고 너도나도 속력을 높여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교차로에서 일어난 접촉사고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러시아 볼고그라드 지도.

박물관 관람 후 식사도 같이했다. 근처 유명한 러시아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목사님이 사주셔서 너무나 고마웠다. 한나절을 함께 보내고 헤어지려니 아쉬웠다. 형, 누나들은 모스크바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고, 목사님은 이곳에 남아 선교활동을 계속하신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러시아 부됴놉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김해뉴스 /최정환·최지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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