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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민홍철 국회의원 억울한 김훈 중위 살인 사건자살로 탈바꿈? - 주간 한국 2016년 기사

  • 박여사
  • 2020-04-07
  • 조회수 74
❍ 사건의 개요
-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241 GP 3번 벙커에서, 경비소대장 대한민국 육군 보병 중위 김훈(육사 52기)이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
- 피해자의 아버지인 예비역 육군 중장 김척 (육사 21기. 1군단장, 3야전군 부사령관 역임) 덕분에 약 600회 내외인 군 의문사 사건 중에서도 가장 이슈, 또한 육군이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각종 잘못과 조작, 의문점이 많아 현재까지도 언론 등에 의해 이슈가 되고 있음

❍ 사건의 주요 내용
- 군 공식 수사결과에 의한 사건 발생 개요는 다음과 같음
● 1998년 2월 24일 오전 9시, 당시 예정에 없던 부대 내 VIP(주한미군 장성 진급자 10명) 방문 일정으로 분주한 분위기
● 그러나 1시간 뒤 일정 취소, 이때 김 중위는 식당에 들어가 물을 마신 후, 소대 사병 모임에서 돌아온 소대원들의 귀대 보고
● 오전 10시 30분경, 김 중위는 식당에 잠시 들러 라면을 먹고 있던 소대원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라면을 몇 젓가락 먹고 식당을 떠남
● 그 후 근무복장을 갖춰 입고 정찰을 나간다며 소대장실을 떠난 것이 오전 11시 45분(이는 당시 소대장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던 부소대장의 증언)
● 직후인 오전 11시 50분경 상황실에 들른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그는 오후 12시 20분경, 식사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던 소대원에 의해 GP 지하벙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 현장에는 김 중위의 오른발로부터 50cm 정도 떨어진 곳에 베레타 M9 9mm 권총이 떨어져 있었고 그의 오른쪽 머리에 직접적 사망 원인이 된 총상 발견

- 군의 공식 수사결과 발표
● 약 2개월 후인 1998년 4월 28일, 사건을 조사한 한미합동수사팀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1차 조사결과를 발표
● 당시 소대원들의 알리바이가 모두 확인되었으며 그들 중 살해 동기를 가진 이를 찾을 수 없었고,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자살이 확실하다는 그들의 발표는 다시 말해 ‘타살의 증거가 없으므로 자살로 판정’이라는 요지의 결론
● 이는 수사 과학적으로 평범한 판단으로 자살의 경우 자살했다는 직접적인 물증이 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에 타살의 증거가 없을 경우 자살로 추정하는 것이 관례, 하지만 이번 경우엔 사건이 타살로 의심될만한 정황과 증거가 후에 명백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에선 성급하게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 그러나 수사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른 김 중위가 자살 시도를 할 당시 취했을 부자연스러운 격발 자세와 총을 잡고 격발했을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 하기가 힘들었고 유족은 이에 반발해 재수사를 촉구
● 이 시점에서 유가족과 인권단체, 언론에서 제기한 의문점만 해도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으로 판명
● 그 뒤 부실수사를 문제 삼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국방부는 1998년 12월 육군 중장 양인목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합동조사단을 조직해서 재수사를 결정
● 조사단은 JSA경비소대원 재소환, 거짓말탐지기, 법의학자 공개토론회를 거쳐서 1999년 4월 국방부는 다시 한번 자살로 발표
● 법의학자 공개토론회에서 참석한 8명의 법의학자 가운데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를 제외한 전원이 자살일 가능성에 무게

❍ 사건의 논란
-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 자살 동기는?
● 국방부 특조단은 ‘김 중위가 부모(특히 아버지)에 의해 원치 않았던 적성을 강요받았고, 이는 자살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육사 진학을 반대한 것은 가족들이었고 그가 일반대학에 진학해 국제변호사가 되길 바랐다는 것이 사실
● 그는 임관 후 사단장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며 사건 발생 1달 전에는 육군정보학교 군사영어 교육반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우수한 군인, 게다가 당시 소대원들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 중위가 그렇게 자살할 인물은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그의 주변인들 의견도 마찬가지

- 총기 관련 논란들
● 총이 발사된 거리 : 노여수 씨의 주장에 따르면 일반적 권총 자살에서 발견되는 ‘접사’가 아니라 ‘근접사’이며, 이는 누군가의 격발에 의한 것
●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 총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된 제 3자의 지문
● 김훈 중위의 권총이 바뀌었다?

- 사건 현장의 여러 의문스러운 흔적들
● 현장에 남겨진 격투의 흔적들과 김 중위의 몸에서 발견된 부상 흔적들
● 시신 옆의 의문의 방탄모

❍ 19년 만에 순직 인정
- 2017년 9월 1일, 19년 만에 순직으로 인정, 다만 사망 원인은 ‘규명 불능’이라는 판단, 결국 사건의 내막은 미제로 남겨짐

❍ 민홍철 관련 이슈
- 김동신 참모총장 지휘로 김훈 중위 사건 재조사 담당, 당시 육군고등검찰부장, 1998년 11월 27일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발표
-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 씨는 민홍철이 미군수사연구소의 감정서(1998년 3월 25일) 내용(스스로 쏘지 않았다, 권총에 지문이 없다 등)을 부정하고 김훈 중위를 권총자살자로 조작, 발표(1998년 11월 27일)했다고 주장
● 또한 그는 4ㆍ13 총선 당시 선거 블로그와 현재 의원 홈페이지에 김훈 중위사건을 명쾌하게 결론지었다고 허위사실을 알린 것은 김훈 중위 유족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
● 실제로, 민홍철의 홈페이지에는 “육군본부 검찰부장(중령) 시절에는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수사해 주목을 끌었다. 사망자의 부친이 중장 출신의 선배 장성이었고 언론에서도 주요 사건으로 다뤄 부담감이 컸지만 그는 차분하고 명쾌하게 결론지었다”고 명기
● 김척 씨는 민 의원 등이 수사 당시 사병과 증거물에 대해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 그로 인해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김모 중사가 컴퓨터 파일을 없앨 수 있게 방치했고 군은 김 중사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등 조직적으로 진실 추적을 회피했다는 것
● 실제로, 조사에 참여했던 최강욱 변호사는 민홍철이 공정수사 방해, 지속적인 염탐시도, 이른바 뻗치기 등으로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

- 이에 대해 민홍철은 김훈 중위 수사에 대해 ‘자살’이라는 말 대신 “타살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우회적으로 입장 표명, 민 의원은 증거조작을 부인하면서 현재도 같은 입장(자살)이라고 답 http://weekly.hankooki.com/lpage/society/201610/dh201610080831061377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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